냉소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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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끝났다. 열렬한 축구팬은 아니지만 나 역시 우리 대표팀을 응원했고 기적같이 16강에 오르는 장면을 보며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의 굴곡을 겪었다. 포르투갈전 막바지 승부를 가른 손흥민의 전력질주와 절묘한 패스 장면은 몇 번을 다시 봐도 너무 멋졌고 자랑스러웠다.

특히 그는 안면 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당하고 선수 생명이 위협받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마스크를 쓰고 모든 경기에 풀타임으로 출전했다. 결과적으로 다치지 않고 좋은 결과를 얻게되어 다행이지만 경기를 보는 내내 안쓰럽고 불안해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나중 외신을 보면 이번 출전은 의학적으로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고 한 행위라고 한다. 선수가 뛰고 싶어 하는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가까이서 조언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감독이나 가족은 생각이 좀 달랐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외국인 감독의 판단은 단순해 보였다. 건강한 다른 선수보다 회복 중인 손 선수가 팀에 더 도움이 된다 여겼을 것이다. 어차피 때 되면 떠날 이 분 입장에서는 매 경기 최선을 다 한다 말하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가족이라도 나서서 좀 말려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나중 방송에 출연한 손 선수 아버지는 좀 달라 보였다. 아들이 경기장에 서려고 얼마나 눈물나게 노력을 했는지를 강조했다. 또, 이런 걸출한 스타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얼마나 치열하게 자식을 담금질해 왔는지를 설명했고, 손흥민은 아직도 부족하므로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겸손한 소망까지 덧붙였다. 

대단한 아버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헌신이 있었으니 자식이 성공했겠구나 느끼며 새삼 감탄했다. 우리나라 스포츠 역사에서 부모의 역할이 돋보인 세 명을 고르라면 당연, 박세리, 김연아, 손흥민일 것이다. 유난히 자식 사랑이 강한 대한민국 부모들이지만 저 3인방의 경우는 넘을 수 없는 벽에 가깝다. 평범한 우리와는 다른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분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내가 만일 손흥민 아버지였다면 다음 세 가지 이유로 자식의 무리한 출전을 말렸을 것 같다.

첫째, 나 같은 평범한 부모는 큰 부상을 입은 자식이 무리하다 크게 더 다칠수도 있는 상황을 바라만 보고 있기 힘들었을 것 같다. 국가적인 큰 대사에 어찌 개인의 입장을 앞세우느냐, 그런 새가슴으로 어찌 자식을 크게 만드느냐 빈정거려도 어쩔 수 없다. 

둘째, 누구든 손흥민 개인의 미래를 자문하는 위치에 있다면 운나쁘면 선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저런 위험부담을 권하기 힘들 것이다. 아직 한참 더 전성기를 누릴 수 있는 선수가 치명적 부상을 당할 수 있는 불확실성에 몸을 던진다는 것은 장기적 커리어 관리 측면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손흥민은 이미 국가대표로서 충분히 헌신해왔고 아무도 경기를 대하는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대표팀에 공헌할 기회는 앞으로도 많다고 다독이며 지금은 몸부터 아끼는 것이 맞다고 말하는 게 틀린 걸까.   

셋째, 사회적 차원에서도 나는 손흥민의 무리한 출전이 위험한 선택이었다 생각한다. 우리가 개인적 의사 결정을 할 때 비용과 편익을 따지듯, 사회적 관점에서도 유사한 판단을 할 수 있다. 손흥민 출전의 사회적 편익에 비해 잠재적인 비용이 크다고 여긴다면 의사 결정은 쉬워진다.

원래 프로선수들은 상대팀이라도 슈퍼스타는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멀리 보아 자신들의 일자리와 수익을 창출하는 선봉장이라 보기 때문이다. 예전 미국의 프로농구(NBA) 인기가 시들했던 시점에 마이클 조던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탄생해 농구 붐을 다시 일으켰다. 조던이 속한 시카고팀이 다른 도시를 방문하면 그의 신들린 경기 모습을 보기 위해 관중석이 꽉 찼다. 그는 리그의 모든 선수들이 나눌 수 있는 전체 파이를 크게 만든 주역이었다. 조던의 상대팀 선수 입장에서는 한 경기 이겨 보겠다고 거친 파울을 해 그에게 부상을 입히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다. 

손흥민은 우리나라 축구계에서 그런 존재다. 단순히 뛰어난 선수 차원을 넘어 어린 선수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앞으로도 한참동안 예전의 박세리나 김연아처럼 긍정의 바이러스를 우리 사회에 퍼뜨릴 수 있다. 만일 그가 피할 수도 있었던 큰 부상을 입고 무대에서 사라진다면 이는 상상하기도 싫은 엄청난 사회적 손실이다. 

반면, 그가 출전해 얻는 사회적 편익은 무엇일까. 큰 부상을 당했고, 재활에 몰두하느라 훈련 한번 변변히 못한 그가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실제, 포르투갈 전의 그 마지막 한 방을 제외하고 손흥민의 경기력은 예전만 못했다.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만일 우리팀에게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 예선 탈락을 했다면 이런저런 뒷말이 많았을 것이다. 

모든 의사결정은 사전적으로 이루어진다. 나중 결과를 보고 나서 그 판단의 적정성을 가늠하기는 쉽다. 하지만 결정의 시점에서는 리스크에 대한 입장이 분명해야 한다. 나는 손흥민의 무리한 출전이 갖는 개인적, 사회적 리스크를 크게 본 사람일 뿐이다. 

서로 얼굴을 아는 프로리그 경기가 아니라 단기 국가 대항전인 월드컵의 경우 일단 이기고 보자는 이기심이 앞설 수 있다. 상대팀 선수들이 손흥민을 거칠게 다루어 퇴장시킬 가능성은 나 같은 아마추어도 상상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상대한 팀의 주전들은 대부분 주요 프로 리그서 뛰는 선수들이라 세계적 스타인 손흥민에게 심한 태클을 걸지 않았다. 공생하고, 상생하는 프로 정신이 돋보였다. 만일 우리 상대가 북한이었다면 어땠을까. 남조선 팀에 지고 돌아가면 어떤 결과가 기다리는지 아는 선수들이 동포라고 봐줬을까. 

이상은 손흥민이 더 오래오래 건강한 선수 생활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고언일 뿐이다. 나라를 위해 개인 한 몸은 내던져도 된다는 식의 대의를 강요하는 사회라면 비난받을 수도 있는 얘기다.

선수 자신도 본인의 선택에 대해 다른 견해도 있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주변에서 그의 희생정신을 칭송하니 뿌듯했을지 모르지만 프로는 아마추어와 달라야 한다. 멀리 보아야 한다. 손흥민 같은 슈퍼스타는 더욱 그렇다. 필요할 때 몸을 아껴 부상을 피하는 것도 실력의 일부다.

살다보면 누구나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는 법이다. 오히려 힘들 때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재충전의 기운을 얻게 된다. 그러려면 좀 자신만의 느슨한 공간이 필요하다. 세계 최정상 프로리그의 득점왕을 두고 아직 ‘월드 클래스’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손흥민 아버지를 보고 말들이 많지만 그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자식을 겸손하게 만들어 더 높게 날게 하려는 그런 열정일 것이다.  

이런 아버지 영향 탓인지 평소 손흥민의 인터뷰를 듣다 보면 늘 바른 말만 한다. 스타인데도 티내지 않는 특유의 겸손함 때문에 다들 그를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돌아서는 그의 어깨는 무엇인가에 눌려 있다는 느낌을 준다. 늘 이 부분이 의문이었는데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좀 풀린 것 같다. 부모건, 사회건 손흥민 안에 너무 많이 들어가 사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나만의 착각일까.  

[P.S. 출전하는 장수가 “목숨이 다하도록 열심히 싸우겠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제갈량은 씁쓸했다. 전투만 보고 전쟁은 보지 못한다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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