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Youtube channel “전주성 교수의 개랑경제학”에 실린 내용입니다]
나는 결정장애가 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 가족,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 모두 그렇다. 특히 식사 메뉴 고를 때 이 증상이 심해진다. 이럴 때 누가 한마디만 해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우르르 그 선택에 동조를 한다.
경제학자들은 대표적인 집단 결정장애자들이라 볼 수 있다. 어떤 한 사안에 대해 다양한 측면을 살펴보고, 비용과 편익의 경중을 따진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딱 부러진 해답을 내놓기보다는, “한편으로는 이렇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렇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영어로 하면, “On one hand, on the other hand” 식으로 표현한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오죽 답답하면 “One-armed economist” 즉, 팔 하나만 있는 경제학자를 필요로 한다 했을까.
그런데, 우리 주변을 보면 가끔 예외적으로 의견이 확실한 사람들이 있다. 맞건, 틀리건 입장이 자기주장이 분명한 만큼 대중의 관심을 끌기도 쉽다.
예전, 구수한 입담으로 인기를 끌었던 야구해설가가 있었다. 이분은 단순 해설을 떠나 투수가 무슨 공을 던질지를 예언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저 투수는 이제 오른쪽으로 높은 직구를 던질 것입니다”라고 직설적으로 말한다. 아니, 저걸 어떻게… 왼쪽, 오른쪽, 가운데, 그리고 위, 아래, 중간 식으로 볼의 위치가 9군데나 가능한데다, 직구, 커브, 슬라이더, 컷터 등 다양한 볼 배합까지 생각하면 이것을 맞출 확률은 지극히 낮다.
그런데 어쩌다 볼이 예상한대로 들어오면 이분은 ‘족집게 스타’가 되고 사람들의 뇌리에는 이 점이 확실히 각인된다. 그렇다면 나머지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할까? 만일 볼의 방향은 같은데 직구가 아니라 커브였다면 “아, 볼이 오다가 좀 휘었군요”라고 답한다. 뭐, 대충 90% 정도는 맞춘 것처럼 들린다. 볼이 위가 아니라 밑으로 떨어지면 “아, 힘이 좀 모자랐네요”라고 한다. 오른쪽이 아니라 가운데로 오면 “볼이 안으로 좀 쏠렸군요” 하면 그만이다. 만일, 정말 원래 예측과 아무 상관이 없는 왼쪽, 아래, 커브로 오는 경우라면 뭐라 말할까. “아, 저 투수가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꾸었군요” 라고 적당히 갖다 붙인다.
한 마디로, 이분은 절대 틀리는 법이 없다. 그러다 가끔 맞추게 되면 ‘족집게 선생’ 명성을 굳히는 것이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얘기 같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사람이 승자가 되기 쉽다. 왜냐?
사람들은 애매한 입장보다 확실한 얘기를 하는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닥터 둠’들의 시즌
요즘같이 경제가 불안한 시절이면 어김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부류들이 있다. 소위, “닥터 둠(Dr. Doom)”이라 불리는 비관론자이다. 뭔가 위기의 조짐이 보이면 이들은 어김없이 나서서 합리적인 전문가들보다 훨씬 더 강한 확신으로 비관적 상황을 예언한다. 예를 들어 “조만간 엄청난 경제위기가 다가온다,” “내년 주식시장은 형편없이 폭락한다” 이런 식이다. 만일, 이 예언이 맞으면 이들은 족집게 예언가로서의 명성을 얻는다. 반대로 경제나 주식시장이 잘 버티는 경우에는 큰 타격이 없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이들의 과거 예언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점쟁이는 원래 힘들 때 주목을 받는 법이다.
세계경제가 위기 조짐을 보일 때 어김없이 나타나는 미국의 R 교수의 경우를 보면, 사실 맞춘 경우보다 틀린 경우가 허다하게 많다. 이 친구는 최근에도 열심히 위기론을 퍼뜨리며 장사하기 바쁘다. 그 외에도 주식시장 쪽으로 가면 닥터 둠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만, 이들이 자기 예언이 틀렸을 때 사과했다는 말을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그저 적당히 눈치보다 확률이 어느 정도 높은 시점에서 딱 찍은 것이 맞으면, “I told you!” 식으로 나치고, 아닌 경우에는 “아니면 말고, 언젠가 위기는 올 것이다” 식으로 얼버무린다.
나는 강의에서 가끔 “예언은 맞고, 예측은 틀린다”는 표현을 쓴다. 사실, 경제예측이나 날씨예보는 100% 정확하기 어렵다. 확률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언의 경우 맞거나 틀리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예언은 대부분 맞는다(!). 나도 가끔 수업 중에 예언을 한다. “흠, 앞으로 3년 안에 우리나라에 큰 산불이 날 것이다”라고 말하면 학생들은 와 하고 웃는다. 그런데 내 말을 녹음했다가, 나중 산불이 났을 때 틀어주면 이게 충분히 그럴싸할 것이다. 사실, 경제 위기를 예측했다고 설치는 선무당들도 대개 이런 부류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보면 이미 Robert Shiller 같은 정통 학자들은 위기 발생 여러 해 전부터 조만간 뭔가 사달이 날 수 있다는 예측을 했다. 경제의 기초여건(Fundamental)을 바탕으로 볼 때 도저히 당시의 자산가치가 유지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다만, 그 거품이 언제 꺼질지는 말하지 않는다. 다양한 환경 변수나, 정책 변수가 있기 때문에 그 시점을 정확히 예언한다는 것 자체가 사기극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위기감이 고조되던 2007년 초쯤 되면 닥터 둠들이 여기저기서 두더지처럼 고개를 쳐들며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위기가 한창일 때 자신들이 맞았다고 설쳐대며 언론 플레이를 하곤 했다. 뭔가, 뉴스를 찾아야 하는 언론에게는 밋밋한 학자들 보다 이런 예언자들이 더 상품 가치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부터 예측보다는 예언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실, 지난 대선 2-3년쯤 전, 나는 이재명, 윤석열 두 분이 대선에서 맞붙게 될 것이라 예언한 적이 있다. 이건 정말 실화다. 밖에 나돌아 다니지도 않고, 방구석에서 내 공부나 하는 사람이 이런 용한 예언을 했으니 내 지인들은 감탄해 마지않았다. ‘신기’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실체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이 믿게 만들면 된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나만큼이나 귀가 얇아서 조금만 기술(!) 들어가면 금방 넘어간다.
얼마 전, 나는 다시 예언을 했다. 다음 대선 결과가 대충 어슴푸레 보이는 것 같다고. 다들 알려달라고 했지만, 구체적 이름을 대지는 않았고 나의 신기만 슬쩍 과시했다. 4지 선다형 찍기 할 때도 1~2개쯤은 좀 지운 담에 찍어야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점쟁이들의 마케팅은 늘 이런 식이다. 꼬리에 꼬리는 무는 식으로 신비감을 확산해 가면 된다.
그렇다면, 요즘 경제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할까? 외환위기 같은 큰 위기가 다시 올까? 오면 언제쯤? 글쎄, 정치 문제는 내 본업이 아니라 마음대로 예언하고 틀려도 아무도 신경 안 쓰지만, 경제 문제는 좀 그렇다. 해외 수출 시장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가, 세계경제 침체의 타격이 클 것이라는 것은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얼마나 큰 위기가, 언제 올지는 정확히 말하기 어렵지만, 상당히 힘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은 자명하다. 이럴 땐, 언제 위기가 오느니, 주식시장이 얼마나 폭락하느니 식의 사기성 농후한 점쟁이들 말에 혼 뺏기지 말고, 위기는 언제든 올 수 있다 생각하고 대비를 미리 해 놓는 것이, 가계나 기업, 그리고 정부가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닌가 싶다.
사실, 점쟁이한테 가면 100번 중 99번은 안 좋은 얘기를 한다. 앞으로 대박 날 거라 하면 손님은 기분 좋겠지만 돈벌이가 안된다. 복채만 몇만 원 내고 다시 안 올 테니까. 대신, 위기감을 조성하면 큰돈 내고 굿을 한판 할 것 아닌가. 그래서 용한 무당을 만나 뭔가 액땜을 하면 다행인데, 그게 아닌 경우 다시 찾아가 항의하면 답은 정해져 있다. 정성이 약해서 그런 거라고, 좀 더 큰 판을 벌여야 신령님이 도와주신다고. 신령님도 우리처럼 돈 좋아하신다. 요즘 불확실성의 시대에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누가 용하고, 누가 선무당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한마디로, 사기 치기 좋은 시절이다. (10/30/22).
[*P.S. 제가 점집에 자주 가냐구요? 에이, 그럴리가. 저는 제가 점을 잘 봅니다. 손금도 잘 보고, 이름도 잘 짓습니다. 학생들 얼굴만 보고 학점 평점을 맞춥니다. 유학문제로 찾아오면 딱 붙을 것 같은 학교 골라주는 일도 잘합니다. 아! 강아지도 잘 고릅니다. 궁금하면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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