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클럽

인류애의 관점에서 전쟁은 절대악이지만, 인류사적 측면에서의 전쟁은 언제나 승자와 패자를 동시에 낳는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 쪽을 일방적 승자라 부르기 어려운 싸움이 됐다. 러시아는 이미 많은 군인과 국제 사회의 신뢰를 잃었고, 서방의 경제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참상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굳이 양국 지도자를 비교하면 세상의 비난을 한 몸에 받는 푸틴보다는 티셔츠 차림의 젤렌스키가 승자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가 전 세계 미디어에 영웅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낼 때마다 내게는 파괴되는 우크라이나 산업 기반과, 인간 존엄을 위협받는 그 나라 시민들의 잔상이 교차하며 나타나 마음이 불편하다. 

때로는 전쟁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이익을 보는 경우도 있다. 한국전쟁은 일본이 도약하는 한 발판이 되었고, 베트남 전쟁은 우리에게 달러를 공급하는 통로가 됐다. 전쟁으로 많은 것이 파괴되지만 복구 과정에서 누군가는 큰돈을 벌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밖으로 눈을 돌리면 승자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비록 1990년대~2000년대 같은 절대 패권 국가의 면모는 잃었지만, 여전히 세계 최강국인 미국은 그 누구보다 러시아 제재에 앞장서고 있다. 물론, 미국 군인은 단 한 명도 이 전쟁에 참여시키지 않겠다는 바이든의 국내 정치용약속과 함께.

그렇다면 미국의 손익계산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국제 패권의 잠재적 도전자인 러시아를 침몰시키고 서방 국가들의 단합을 유도해 가라앉고 있던 국제 위상을 높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국제 정치 얘기다. 그럼 경제적 측면은 어떨까.

첫째, 미국의 군수 산업은 새로운 수요에 신바람이 났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전 수요를 넘어, 전쟁 위협을 느끼는 주변 국가까지 고객이 확장될 것이다. 군수산업은 전쟁을 사랑했고, 미국 정치의 깊숙한 곳에 은밀한 손을 뻗치고 있다. 

둘째, 미국의 석유 산업 역시 뜻밖의 호황에 표정 관리 중이다. 러시아에서 에너지를 공급받던 독일 등 많은 국가들이 미국의 셰일 가스 등으로 수입선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 문제로 화석 연료 사용이 줄어들던 추세에서 어마어마한 반전이 벌어지고 있다.

셋째, 미중 갈등으로 국제 분업 체계와 글로벌 공급체인이 흔들리며 반도체 등 전략 물자의 자국 생산을 추진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더 큰 정당성과 추진력을 얻게 될 것이다. 이런 불안한 시국에 누가 군사 강국 미국의 요구를 쉽게 거절할 수 있을까. 

넷째, 원인이 어디에 있건 세계 경제가 흔들리면 국제 자본은 미국으로 향한다. 가장 강한 국제결제통화인 달러화만 한 피난처(safe haven)가 없기 때문이다. 통상 자국 통화가치가 높아지면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단점이다. 그런데 지금은 30여 년 만의 인플레이션 압박이 있는 상황이라 자국 통화가치가 올라가 수입 물가 압력이 덜해지는 이득이 월등히 크다. 다들 수입 물가를 걱정할 때 미국은 가만있어도 달러 가치가 올라가는 꽃놀이패를 즐기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극복 과정에서 대부분의 나라는 과도한 재정지출을 했다. 신간 <재정전쟁>에서 언급했듯 위기가 지나가면 상당수 나라는 재정적자 문제로 허덕일 것이다. 특히 해외 자본으로 적자재원을 마련한 개도국들은 무너지기 쉽다. 이런 마당에 달러 가치마저 올라가면 달러로 표시된 자국 부채의 부담은 더 커진다. ‘의문의 1를 당하는 당사자들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전쟁 복구 수요를 둘러싼 주변국의 경쟁은 치열할 것이다. 요즘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이만한 달러 벌이 기회가 어디에 있겠는가.  또한미디어 스타젤렌스키는 영웅으로 기억될지 모르지만, 우크라이나 경제와 시민은 패자로 남지 않을까 걱정된다. 충분히 예견된 전쟁 위협에 소홀히 대처하다 위기가 닥친 후 국민들에게 손을 벌리는애국심 마케팅은 언제나 뒤끝이 씁쓸하다(<재정전쟁> 4). 전쟁의 원인이나 배경이 무엇이건, 나라를 지키려 똘똘 뭉친 우크라이나 시민들에게 밝은 미래가 있기를 기원한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