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클럽

엊그제 식구들에 떠밀려 ‘웰컴투동막골’이라는 영화를 봤다.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강원도 오지 마을에서 우연히 조우한 미군, 인민군, 국군 병사들이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매개로 서로를 이해하고 의기투합한다는 매우 비현실적인 줄거리다. 영화 관객의 다수를 차지한 도시 젊은이들에게 있어 한국전쟁은 할아버지의 전설이고, 시골 사투리는 부모님의 고향 추억일 뿐이다. 그런데도 영화 속의 장면들이 현실처럼 젊은이들의 가슴을 적시는 것은 단순히 연출이나 연기의 힘만은 아닐 것이다. 나중 미군 병사를 구출하러 마을에 침투한 연합군 군인이 마을 노인의 상투를 잡고 댓돌에 짓이길 때 잠시나마 젊은이들은 그것이 단순한 영화 속의 전쟁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겪은 전쟁의 편린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남과 북, 그리고 외국세력으로 상징되는 분단의 현실이 내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경험이라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최근 대규모 흥행에 성공한 한국 영화 중에는 남북문제를 다룬 경우가 많다. 그런데 ‘쉬리’, ‘공동경비구역’, ‘실미도’ 그리고 ‘태극기 휘날리며’는 엄청난 제작비, 전략 마케팅, 유명 감독, 흥행 배우, 피 튀기는 장면 등 외형적 요소가 압도한다. 이에 비하면 동막골은 무모한 듯한 시나리오에 신인 감독과 연기파 배우들이 합세한 아담한 작품이다. 그런데도 관중 동원에 성공했다면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작품성은 TV 드라마에도 대충 감동하는 나 같은 선무당이 함부로 언급할 영역도 아니고 나아가 이것이 흥행의 필요조건이나 충분조건이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관객을, 특히 전쟁 영화에 특별한 애착이 없을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나는 이 영화의 비결이 ‘주인공이 몽땅 죽는 비극적 결말이 오히려 행복하게 느껴진다’는 역설에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는 주인공 죽이기가 일상화 돼 있다 해도 빈말이 아니다. 초반에 거창하게 이야기 전개를 하다 결말을 맺을 자신이 없다 보니 거의 예외 없이 주인공을 교통사고나 백혈병으로 잡아 관객에게 충격을 선사한다. 이런 작품들은 보고 나면 기분이 나쁘다. 영화 ‘말아톤’의 마지막 장면인 주인공의 행복한 미소는 관객에게 그대로 전염되어 극장 문을 나서는 마음이 즐겁다. 그런데 영화 동막골은 주인공이 죽어도 불쾌하기보다는 수긍의 훈훈함이 번진다.  

이는 어쩌면 관객들이 마음으로 느끼는 주인공이 영화 속의 주인공과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분쟁의 상징인 남과 북의 군인들이 힘을 합쳐 구한 마을 사람들이 진정한 주인공이라면 비극이 웃음을 선사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영화를 보며 나는 어릴 적 쓰던 사투리와 고향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육이오 사변’의 끔찍한 경험을 입에 달고 살던 부모님 세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가 정선아리랑 가락을 읊조리고 머리에 꽃 꽂은 여주인공의 말투를 흉내 낼 때 아내와 아이들은 예전처럼 촌스럽다고 놀리지 않았다. 

오늘은 광복절이다. 해방둥이들이 환갑을 맞는 해라 감회가 새롭고 연휴기간 동안 남과 북이 함께하는 행사도 풍성하다. TV를 켜면 기념식장의 노무현 대통령, 서울시청 앞의 이명박 시장, 그리고 월드컵 경기장의 본프레레 감독을 볼 수 있다. 이해관계에 따라서는 애초부터 이들이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기대가 컸는데 실망 또한 작지 않아 애증이 교차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래도 이 땅의 리더인 그들이 잘해야 민생은 행복하다. 물론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사실조차도 잊고 광복절 특집 오락 프로그램으로 채널을 돌리거나 뒤늦은 휴가 길에 나설 것이다. 

경기장에 가서 붉은 옷 입고 ‘워이~워이~’ 소리 질러야만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TV 토론에 나와 대한민국 장래는 자기 손에 달린 것처럼 온갖 미사여구로 설쳐대는 정치인이 과연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일지도 의문이다. 동막골 주민들은 세상물정 몰라도 행복했다. 그 영도력의 힘이 무엇이냐고 마을 촌장에게 물었을 때 나온 대답은 ‘그저 많이 먹이면 된다’ 였다. 이방인인 영화 속의 주인공들이 웃으며 죽음을 맞을 수 있었던 것도 자신들의 희생이 더 큰 행복을 낳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여름 휴가가 끝나면 본격적인 정치계절이 시작된다. 대중의 시선, 특히 젊은이들의 표심에 관심이 많은 정치인들은 왜 도시의 젊은이들이 낯선 강원도 사투리에, 버선 벗어 얼굴 닦는 미친 소녀의 미소에 반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러려면 이 땅의 진정한 주인공이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05.08.15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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