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리나라 교육 현장의 상대평가나 팀플평가 등에 대해 별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래전 쓴 글이만 지금도 제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최근 상대평가를 근간으로 하는 고교 내신등급제가 도입되며 고1 교실의 황폐화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창의력을 기르고 우정을 키워야 할 어린 학생들이 친구를 적으로 느끼며 상대의 노트를 찢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우리 사회 현실을 감안할 때 내신 입시가 성적 부풀리기와 사교육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아마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패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수요자 반응을 사전적으로 예측하지 못하고 정책을 시행한 것도 문제지만 부작용을 치유한다고 상대평가를 강화하는 것은 더욱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처럼 주어진 유인에 소비자가 탄력적으로 반응하는 상품이 드물다. 탄력적인 재화에 세금을 매기면 엉뚱한 사람들에게 부담이 전가되고 사회적 비효율이 커지듯이, 사소한 듯 보이는 교육정책의 변화라 해도 사회적 파장이 매우 클 수 있다. 창의력을 좀먹는 입시 중심 사교육을 조장해온 교육정책 덕분에 노동시장은 이미 심각한 구조적 불균형을 겪고 있다. 대학을 나와도 갈 데가 없는 학생도 딱하지만 나라 전체로 지불하는 효율 비용이 엄청나다. 부잣집 자식만 유리하게 만드는 불공평은 차치하고 하는 말이다.
상대평가는 경쟁 효과를 높일 것이라는 일반의 기대와는 달리 대학교육 역시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A학점 몇 퍼센트 하는 식으로 비율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남보다 못하면 좋은 학점을 받기 힘들다. 학점관리를 해야 하는 학생들은 재수강을 하게 되는데 정상보다 더 많은 과목을 듣다 보니 공부량이 분산된다. 자연 모든 과목에서 좋은 성적이 나오기 힘들고 이는 또 다른 재수강으로 이어진다. 학생들 고생만 시키며 교육의 질은 오히려 떨어뜨리는 무모한 상대평가 보다는 나만 열심히 하면 성적 걱정은 안 해도 되도록 자율과 설득의 힘이 강의실을 지배하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절대평가를 하면 실력 없는 선생들은 성적을 잘 주고 학생들은 자연 그리 몰릴 것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이것이 왜 문제인가. 엉터리 학점 쌓기에 열심인 학생과 이에 공조하는 교수, 제 실력 쌓기에 열성인 학생과 양식 있는 교수라는 두 집단으로 대학 구성원이 양분된다면 이 보다 더 만족스런 면학분위기는 없다. 모두가 행복하면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아니던가.
상대평가가 경쟁을 유발시켜 실력을 상승시킬 것이라는 주장 역시 순진한 추측이다. 시장경제에서 효율의 전제조건이 되는 경쟁은 누구든 남 신경 쓸 것 없이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면 결국 사회 전체의 이득이 극대화된다는 의미의 ‘완전경쟁’이다. 반면 소수기업이 시장을 분할하는 불완전경쟁 하에서는 상대를 의식해야 한다. 냉장고나 자동차 회사들은 엄청난 광고전을 벌린다. 사람들은 흔히 너 죽고 나 살자는 이런 식의 경쟁을 효율의 원천으로 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비효율을 낳기 쉽다. 만일 이 기업들이 광고비를 연구개발에 쓴 다면 소비자는 더 좋은 제품을 싸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실력 있는 기업보다 독점력 있는 기업이 살아남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교육시장도 마찬가지다. 사교육을 조장하는 교육정책은 독과점의 경우처럼 실력이나 노력보다는 돈이나 기득권을 승부의 결정요인으로 만든다. 개별 주체는 주어진 유인에 합리적으로 반응하는 것이지만 사회전체의 효율과 형평은 훼손된다. 어차피 학생들이 사회로 나가면 진정한 의미의 상대평가를 받게 마련이다. 따라서 학교에 머무는 동안은 이들이 절대실력을 기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남을 죽여 나를 내세우는 부정적인 경쟁이 아니라 나를 높여 남을 이기는 긍정적인 경쟁이 사회전체의 이득을 극대화한다. 친구보다는 나 자신을 이기게 만드는 교육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후적 평가 보다 사전적 유인이 앞서야 한다. 학생 스스로 노력하게 이끌어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수와의 경쟁을 유도해내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다.
대학 강의실은 자유롭게 사고하며 실력을 쌓는 전당이지 제살 까먹기 싸움터가 아니다. 중고생의 경우 부득이 대학입시라는 현실을 거쳐야 한다면 마지막 싸움은 가급적 뒤로 미뤄줘야 한다. 어릴 때부터 학원에서 제조된 성형수재들도 좋지만 좌절과 실패의 늪에서 허덕이는 자연산 이류학생들에게도 기회와 희망을 주는 것이 교육이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은 입시전쟁을 앞당기다 못해 이제는 고1 중간고사부터 자식들을 싸움판에 몰아넣고 있다. 이것은 비효율적이고 불공평하며, 부도덕하고 부끄러운 선택이다 (05.05.09-동아일보).
번호 제목 작성일 조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