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클럽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대통령을 뽑을까. 우선 잘 먹고 잘살게 해 주는 지도자를 원할 것이다. 마음 편하게 살려면 어느 정도 물질적으로 풍족해야 한다. 물론 잘산다는 것은 돈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정치나 사회 문제에서 내 생각을 대변해 줄 후보에게 호감이 간다. 이런 가치판단의 영역은 곧 이념의 차별화로 이어지는데 안보, 분배, 교육, 낙태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진보나 보수, 아니면 제3의 길과 같은 선택이 존재한다. 물론 이런 정치적, 경제적 측면에 더해 인간적으로 끌리기까지 하는 후보라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대선 후보에 대한 이런 개별적 선호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면 대선 승부를 가를 핵심 요인을 경제, 정당, 인물로 요약할 수 있다. 책임 정당의 전통이 오랜 선진국 경험을 보면 선거 당시의 경제 상황이 당시 집권당을 평가하는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된다. 즉, 선거 시점의 경기가 나쁘거나 악화되고 있으면 집권당 후보에게 치명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 반면 경기가 좋은 경우에는 집권당에 유리하긴 하지만 그 강도가 불황인 경우같이 절대적이지는 않다. 사람들은 나쁜 것은 오래 기억하지만 좋은 것에는 쉽게 익숙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4년 중임제인 미국의 경험을 보면 현직 대통령은 집권 프리미엄이 크기 때문에 재선될 확률이 높다. 클린턴, 오바마는 물론 임기 중 인기가 높지 않았던 부시도 재선에 성공했다. 그런데 가장 최근 재선에 실패한 트럼프의 경우 2020년 가을 선거 시점이 코로나 위기의 정점과 겹쳐 경제 불확실성이 컸던 것이 핵심 패인 중 하나였다. 그 이전의 재선 실패 사례로는 레이건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1992년의 부시(2000년에 당선된 그의 아들과 구별-각주)와 선거와 퇴직 후 집 짓기로 유명해진 1980년의 카터를 들 수 있는데, 두 경우 모두 경제 문제에 대한 유권자 불만이 높았던 시기에 선거를 치렀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편 정당은 장기적인 비전을 포함한 다양한 구조적, 이념적 정책 대안을 대변한다. 민주 정치의 역사가 오랜 나라일수록 진보 정당과 보수 정당의 대립 구도가 뚜렷하다. 이 경우 유권자들은 아예 당적을 갖는 경우가 많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당적을 뛰어넘어 투표를 하기도 한다. 특별히 경제가 나쁘거나 인물이 매력적인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트럼프같이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경우에는 인물 자체가 정당 변수보다 중요했던 유권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공화당원이지만 트럼프를 찍지 않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이민자에게 밀려 직장을 잃은 민주당원이 그를 택한 경우도 많았다. 이처럼 인물 변수는 관측이 가능하지 않은 제반 요인을 포괄한다. 

정치 이념을 배경으로 한 정당 대립이 현실 선거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경제 변수의 경우만큼 뚜렷하지 않다. 중위투표자 정리(median voter theorem)를 선거에 응용한 이론이 따르면 진보와 보수 양당의 대선 공약은 중간 지점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 어느 한 쪽이 지나치게 이념 지향적으로 나가면 진성 지지자들은 좋아할지 모르지만 상대 진영에서 중도 성향의 유권자를 확보하기가 쉽다. 실제 미국 대선을 보면 경제 문제 등에 있어 양대 정당 후보 간의 차이가 그렇게 뚜렷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물론 이 이론은 조심스럽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경제 등 한 변수만 놓고 보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지만 안보나 사회 문제를 포함한 여러 변수를 동시에 고려하면 결과 예측이 애매해진다. 사람에 따라서는 개별 안건에 따라 이념 성향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인데, 중간 계층일수록 이럴 가능성이 크다. 즉, 경제 문제에는 진보 경향을 띠지만 낙태와 같은 사회 문제는 보수적인 경우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전쟁 중에 말을 바꾸지 않는다’는 속담처럼 국가적 긴장 상황에서는 현직 대통령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라크 전쟁 중이던 2004년에 재선을 치른 부시가 낮은 인기에도 승리한 것이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시대 흐름의 전환이 있는 시기에는 정당 간의 이념 차이가 별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큰 정부의 복지국가에서 작은 정부의 시장주의로 전환이 이루어지던 1980년대 초반의 경우 감세와 규제 완화를 공약으로 들고나온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를 상대하기는 쉽지 않았다. 시대 정신에 부합하는 그들의 강한 이데올로기는 큰 정부의 비효율에 지친 다수의 유권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보수의 시대로 불리던 이후의 십여 년 동안 이들의 인기는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 스펙트럼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 등 정치 선진국과는 차이가 있지만 경제, 정당, 인물이라는 세 가지 변수는 여전히 유용한 분석틀이 될 수 있다. 우선 오랫동안 높은 성장률이 지속됐기 때문에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경기, 물가, 실업과 같은 경제 변수가 선거의 큰 요인이 아니었다. 그러다 외환위기 와중에 치러졌던 1997년 대선에 이르면 경제가 정권교체의 결정적 변수가 됐다고 평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에는 예전에 비해 성장률이 떨어지고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경제 변수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은 세계적으로 경기침체의 조짐이 뚜렷했던 시기인데 신용카드 및 주택 규제 완화 등 경기 부양 수단에 힘입어 2002년의 성장률이 7%에 달했다. 그 덕분에 그해 말에 치러진 선거에서 집권 민주당은 경제 문제로 손해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2007년에 이르면 주변 경쟁국보다 못한 경제 성장률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기업인 출신의 후보를 선택하게 된다.

우리나라 대선에서도 정당은 언제나 중요한 변수였다. 다만 정당의 구분이 정책이념이 아닌 지역이나 인물 같은 요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특히 민주화 이전에는 여당과 야당의 구분 자체가 유권자 선택을 가르는 핵심 변수였다. 군사 독재를 비판하는 시민의 입장에서는 경제, 이념, 지역, 인물 같은 요인이 민주화 열망을 압도할 변수로 작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1987년의 민주화 개헌 이후에는 합법적인 정권 교체가 가시권에 들어오며 선진국형 정당정치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마련해도 그것이 제대로 작동할 문화가 정착되려면 시간이 걸린다. 주류 정당의 이념 정체성보다는 지역색 강한 인물들이 한동안 정당 정치를 지배했다. 

앞으로의 전망은 어떨까. 시간이 흐르며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식은 많이 성숙해졌지만 정치 수준의 향상은 상대적으로 더디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명목상으로는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는 양당정치처럼 보이지만 언제든지 이합집산이 가능한 실질적인 연립체제 상황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기존의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부작용을 지적하며 개헌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어떤 정치체제가 적절한지의 문제는 다양한 차원으로 따져봐야 하겠지만, 정치권의 복지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포퓰리즘을 제어하고 납세자 주권을 확립할 책임 정치의 구현이 중요한 평가기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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