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논평

개혁은 어렵다. 혜택은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지만 비용은 단기에 집중되기 때문에 저항이 있기 마련이다. 임기 2년을 지나는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 진도는 보잘것없다. 교육은 수능 ’킬러 문항’을 둘러싼 공방이나 사교육 비리 적발 사례는 있었지만 근본적인 청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노동의 경우 2023년 봄 주당 근로시간의 유연화 시도가 반발에 부딪힌 다음 별다른 얘기가 없다. 연금개혁도 기금 고갈 시점을 연장하는 몇 가지 시나리오 제시에 그치고 있다. 자연히 다수 의석의 야당을 상대해야 하는 임기 5년의 정권이 너무 무리하게 개혁 전선을 넓힌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진단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첫째, 이 세 분야에 저출산 문제까지 더한 인적 자원 영역은 연계성·보완성이 강하기 때문에 큰 틀에서 함께 다루는 것이 적합하다. 예컨대 교육이나 일자리 문제를 못 풀면 출산율을 높이기 어렵고, 출산 모멘텀을 되돌리지 않으면 연금개혁을 완성하기 어렵다. 병렬식으로 개혁 과제를 다루면 정책 자원이 분산돼 비효율적이다.

둘째, 임기가 짧아 개혁이 어렵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한번 성공하면 그 혜택이 몇 세대에 걸쳐 나타날 개혁 과제를 한 정권의 임기 내에 마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긴 안목으로 ’정권을 이어가는 개혁’을 구상하지 못하고 그저 자기 임기 내에 뭘 해내야 업적이라 여기는 집권자들의 이기심이 개혁을 그르치는 주된 이유다.

셋째, 의회 소수당 정권이라 뭘 하기 어렵다는 것도 변명에 불과하다. 일반 정책 법안과 달리 개혁 과제는 의석보다는 우호 여론 확보가 훨씬 중요하다. 아무리 다수당이라도 개혁 의제에 잘못 손댔다가 다음 선거에서 참패할 수 있다. 반면 소수당이라도 다수 여론을 등에 업으면 개혁 동력이 생긴다.


 


의석수보다는 전략 부재가 문제

윤석열 정부의 개혁이 주춤거리는 것은 전략 부재 탓이 크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청사진이 있어야 하고, 공론화 과정을 통해 우호 여론을 확보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정치적 타협을 이뤄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성립하지 않으면 다가오는 총선에서 의회 다수당이 된다 하더라도 개혁 의제를 밀어붙이기 어렵다. 역으로 소수당으로 남게 돼도 개혁의 불씨를 살릴 기회는 남아 있다.

정책 정당의 전통이 약한 우리 정치 환경에서는 정당 차원에서 준비해온 개혁안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청사진이라도 제대로 만들어 다음 정권에 넘기는 것만으로 공헌이 된다. 청사진에는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목표와 전략이 담겨야 한다. 예컨대 연금개혁은 현실성 없는 시나리오로 시간 낭비를 그만하고, 핵심 필요 조건인 보험료 인상에 따를 저항을 어떻게 극복할지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교육개혁도 수능의 자격시험화, 내신 절대평가, 입시 자율권을 한 세트로 만드는 방식처럼 변화가 느껴지는 제안이 필요하다.

청사진이 마련되면 공론화를 통해 우호 여론 확보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국민정서법’이 지배하는 교육 분야는 거의 전 국민이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에 어떤 안을 내놓아도 갈등이 발생하기 쉽다. 어느 정도 증세가 필요한 연금개혁이나 조세개혁은 자칫 절대다수 유권자를 적으로 만들 수 있다. 노동개혁은 아무리 합리적인 제안을 내놓아도 곧바로 이념 전쟁의 진흙탕에 빠진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의 시동을 걸어줄 다수 여론을 확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개혁의 걸림돌로 ’기득권의 고착화’ 못지않게 심각한 것이 ’사고의 고착화’다. 나의 신간 ’개혁의 정석’에서는 ’정치인의 포퓰리즘’과 ’관료의 경직성’에 더해 ’전문가의 고정관념’을 개혁의 숨은 적으로 적시했다. 개혁의 시동을 걸려면 기초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변변한 전략도 없이 의석수 한탄만 한다면 개혁은 물 건너간 것이다.

 


 

교육은 모라토리엄·노동은 분할정복

개혁에 진심인 정권이라면 임기 내에 마칠 과제와 다음 정권으로 넘겨줄 것을 구분해야 한다. 교육은 입시제도, 교육체계, 대학 서열화 문제를 동시에 다룰 획기적인 청사진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부분적인 개편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사교육비만 늘릴 것이다. 현 임기 중에는 큰 제도 개편 없이 정파를 초월하는 최선의 청사진만 만드는 ’교육 모라토리엄’ 방식이 최선이다. 다음 정권에 누가 집권하건 정치적 부담 없이 이를 실천하게 하자는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인 수능을 과감하게 수술하고 이를 전제로 다른 분야를 조율해야 한다.

노동개혁은 대기업과 대형 노조가 대립하는 현 구조하에서는 정권의 보수 이념을 내세우는 정면 대결보다는 사안을 쪼개서 다루는 분할정복(divide and conquer)이 적절하다. 임금체계는 호봉제냐 성과급이냐 하는 이분법보다는 중장년 노동자의 기득권을 인정하면서 신규 일자리부터 합리적인 보상체계를 적용하는 편이 낫다. 정년 연장은 핵심 수혜자인 대기업 노조원과의 협상 수단(노동시간 등)으로 삼을 수 있다. 합리적 논리가 안 통하는 영역에서는 협상의 기술이 더 중요한 덕목이다.

연금개혁은 ’일에는 순서가 있다’라는 상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이 월 60만원 수준이다 보니 정부는 기초연금으로 보완하려 들고 제도는 복잡해진다. 연금 같은 연금을 만들려면 현재 9%인 국민연금 보험료율부터 높여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보험료율, 평균 수령액이 월 250만원인 우리나라 공무원연금의 보험료율은 모두 18%다.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늦추는 것은 정말 필요한 시점에 쓸 카드로 아껴놓아야 한다.

보험료 인상에 따르는 저항과 올라간 보험료를 더 오래 부담해야 하는 청년세대의 반발을 해소하려면 정부도 뭔가 무기가 있어야 한다. ’개혁의 정석’에서 제시한 방안은 연금 당국자에게 200조원을 주고 알아서 쓰게 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특별 기금을 조성해 보험료 인상분 일부를 보전해주되 청년세대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보조금 비율이나 기간을 차별화하는 방식이다. 대략 연 20조원이면 10년에 걸쳐 보험료율을 15%로 올릴 수 있다고 본다. 연금 보험료는 일반 세금과 달리 직접적 혜택으로 되돌아온다는 점, 정부 보조를 감안하면 지금 보험료 인상에 동의하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점을 설득 포인트로 잡아야 한다.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또 다른 과제는 출산율 회복이다. 일하는 세대의 인구가 은퇴자보다 많다면 연금 기금이 고갈돼도 부과 방식으로 바꾸면 된다. 그런데 지금은 보험료도 못 올리면서 출산율마저 추락하고 있다. 이는 시한폭탄이 아니라 핵폭탄급 재앙이다. 개혁을 미루다 30년쯤 후 기금이 고갈되면 재정에서 감당할 부담이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을 넘어선다. 이것도 출산율이 1.2명 수준으로 회복된다는 전제하에서 하는 말이다. 무책임한 복지 재정으로 나라를 말아먹은 남미 국가들이나 그리스 사례가 남 얘기가 아닐 수 있다.

 

연금개혁과 출산 대책을 위한 재원 확보

이상의 3대 개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저출생 대책이다. 남은 임기 중 출산율을 상승 추세로 되돌리기만 해도 엄청난 업적이다. 하지만 기존의 방식으로는 어림도 없다. 결혼 및 출산 문화를 바꿀 제도 변화를 가속화하는 동시에, 획기적인 한시적 유인을 통해 추락하는 출산 모멘텀을 되돌려야 한다. 초점을 분산하지 말고 눈에 확 띄는 소수 대안에 예산을 집중해야 한다. 한시적으로 하는 것은 이래야 유인 효과를 극대화하고 예산의 지속가능성이나 다른 분야와의 형평성도 고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례로 5~10년 동안 20대에 출산하면 무조건 1억원을 주는 방안을 보자. 현재 평균 초산 연령은 33세이고 29세 이하 산모의 신생아(4만명) 비중은 17.6%밖에 되지 않는다. 20대 출산율이 높아져서 평균 초산 연령이 낮아지면 둘째를 낳을 가능성도 커진다. 결혼 유인도 생길 수 있다. 이 유인으로 30대 이후 산모(출생아 19만명)의 10% 정도가 출산 시점을 20대로 앞당기고, 출산율 자체도 10% 정도 증가한다면 20대 산모의 신생아 수는 6만5000명으로 늘어나 총 6조50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만일 30대 이후 출산에도 3000만원 정도 지급한다면 5조~6조원이 추가된다. 적지 않은 예산이다. 여기에다 허경영 씨가 울고 갈 강력한 한시적 주거 대책까지 추가한다면 필요한 예산은 더 늘어난다. 정권의 명운을 걸고 덤벼야 가능한 일이다.

결국은 돈이다. 복잡한 세제를 대폭 단순화하는 근본적 조세개혁이 가능하다면 일반 납세자의 큰 부담 없이 GDP의 5% 수준에서 조세 부담률 증가가 가능하다. 인구나 연금 같은 국가적 대사를 위해 부가가치세율을 1~2% 올리는 옵션도 있다(10조~20조원의 세수). 물론 이런 ’쉬운’ 증세는 다른 대안을 소진한 다음 쓰는 최종 병기다.

당장은 개혁 친화적인 목적세를 고안해 안정된 기금을 조성할 수 있다. 별 근거도 없이 여러 부처가 나눠 쓰는 12조원의 담뱃세 수입을 ’출산장려세’로 전환할 수 있다. 담뱃세에다 주세와 복권 수익금을 더한 20조원을 앞서 언급한 연금 기금 재원으로 쓸 수도 있다.

일부 개별소비세를 ’사치세’로 전환하면 5조~6조원의 개혁 재원이 나온다. 이런 대안은 여론 지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정권의 의지만 있으면 기득권 저항을 극복할 수 있다. 요컨대 개혁이 쉽지는 않지만 전략과 의지만 있으면 불가능한 영역은 아니다.


 

[전주성 이화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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